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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막 번 역 : 정 구 웅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각본, 감독
아녜스 바르다

 

제작
로잘리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반겨줘서 고마워요

 

이 근사한 대극장이
오늘은 영화관이라니

 

가슴이 벅차네요

 

위에 '천국의 아이들'도
있을지 몰라요

 

제 영화 중엔 유명한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죠

 

그래도 숱한 해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게 있어요

 

저한텐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영감, 창작, 공유죠

 

영감이란
'왜 영화를 만들까?'

 

'어떤 동기, 어떤 생각
어떤 상황'

 

'어떤 우연이 욕구를 낳아
영화란 일을 하게 할까?'

 

창작이란
'어떻게 만들까?'

 

'어떤 방법과 구성이
좋을까?'

 

'혼자 할까?
컬러로 할까?'

 

창작이 실제 작업이죠

 

세 번째는 공유입니다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아닌

 

보여주는 거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공유의 실례죠

 

이 세 가지가
절 이끌었어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요

 

먼저 단편을
하나 소개할게요

 

이런 만남이 있을 때
자주 보여드리는데

 

왜냐하면
제 친척 한 분이 나와서

 

마치 절 소개해주듯
이야기를 하거든요

 

우연히...

 

우연히 샌프란시스코의
축제에 갔는데 친구가

 

"누가 널 아는 것 같아
화가인데, 바르다래"

 

소살리토항 배 위에
산댔어요

 

그래서 찾아갔죠
수요일이었어요

 

전 벼락을 맞은 듯
그분에게 반했고

 

'반드시 찍어야 해'란
생각이 스쳤죠

 

사실 그분을 만났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찍지?'란
생각부터 떠올랐어요

 

찍으며 편집을 고민했죠

 

이 만남이 주는
달뜬 기분, 흐뭇함

 

흥분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이제 뭐라고 하죠?
"편집 영상, 큐"?

 

얀코 삼촌
(1967)

 

바르다 할아버지!

 

- 바르다 씨?
- 네

 

아녜스 바르다란 분이
찾아왔어요

 

아그니스?
외젠의 딸 말인가요?

 

그건 모르겠고...

 

- 외젠의 딸인가요?
- 네, 맞아요

 

- 외젠의 딸인가요?
- 네, 맞아요

 

신 C 8, 테이크 2

 

컷!

 

신 C 12

 

밀러의 책을 읽고
저도 궁금했어요

 

나도 마찬가지란다

 

널 아껴주고 싶구나

 

넌 내 조카야

 

- 그런 것 같네요
- 확실해!

 

컷!

 

기적의
전형적인 예시죠

 

영감을 받아 촬영까지
하루 만에 끝낸 뒤

 

차분히 편집을 했죠

 

영화를 만들려는 분들
특히 입문하는 분일수록

 

인내심은 필수예요

 

큰 기획이 있으면 학교나
다른 곳의 돈을 받아야죠

 

그러니 인내를 가지되
일단 이런 건 제껴두고

 

가진 걸로
빨리 많이 찍으세요

 

얀코 삼촌도 좋은 분이고
밝은 영화라 잠시 봤지만

 

제 대표작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죠

 

여러분 중에 '클레오'를
보신 분 있나요?

 

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는 게 어디야"죠

 

'클레오'가 만들어진 데는
두 조건이 큰 영향을 줬죠

 

늘 그렇듯 60년대에도
집단적 공포가 있었는데

 

가장 많이 두려워한 게
암이었어요

 

다들 암을 무서워했죠

 

다른 하나는
제작자의 말이었어요

 

"고다르, 드미와 했던
그런 영화를 원하는데"

 

"돈은 많이 못 써"
그래서 전 궁리했죠

 

'일단 파리가 배경이면
여비, 숙박비는 안 들겠고'

 

'하루 만에 찍으면
세트 비용도 아끼겠지'

 

이때 문득 시간을
확 줄이잔 생각이 들었죠

 

'그래, 딱 한 시간 반
90분만 영화로 만들자!'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사실 클레오와 동행한 건
5시부터 6시 30분까지죠

 

시간을 말하는 건
어렵죠

 

우리가 겪는 시간은
기분 좋을 때, 무서울 때

 

기다릴 때, 즐거울 때
모두 달라요

 

이런 게
'주관적 시간'이라면

 

'객관적 시간'도 있어요
명확하고 기계적이고

 

시간, 분, 초 단위로
계산되죠

 

전 이 두 시간을
결합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 시계들의
'객관적 시간'과

 

영화의 시간 동안 그녀가
겪는 '주관적 시간'을요

 

이 카드가 꼭 죽음을
뜻하진 않아요

 

점술사는 죽음이 아닌
큰 변화라고 말하지만

 

클레오는 매달린 남자와
해골을 보며

 

갑자기 겁을 집어먹죠

 

이런 공포
죽음의 위협은

 

종종 의식은 못 할지라도
사라지진 않죠

 

발둥 그린의 작품 속
이 미녀와 똑같다

 

해골은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속삭이고

 

머리채를 잡아당긴다

 

이걸 엽서로 만들었어요
작아서 잘 안 보여도

 

제겐 작품의 중심에 있는
큰 심리적 이미지였어요

 

이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죠

 

전반 45분과
후반 45분

 

그리고 딱 중간에서
노래를 해요

 

만약 그대가
너무 늦으면

 

난 이미 땅에
묻혔을 거야

 

외롭게, 추하게
그리고 창백하게

 

그대 없이

 

그대 없이

 

그대 없이

 

너무해
못 하겠어

 

너무 끔찍해!

 

- 왜 이러죠?
- 피곤해서요

 

그나저나 '벌레'란 가사가
불길하네요

 

그냥 라임일 뿐이에요

 

진짜 좋은 곡이에요

 

이 '사랑의 절규'는
가요계의 혁명이에요

 

그럴까? 가요가 뭔데?
어차피 곧 잊혀!

 

변덕맞긴!

 

변덕? 당신 입에서
그 말이 나와?

 

당신들이 날 변덕맞게 해
바보, 인형 취급도 모자라

 

불길한 가사로
혁명을 하라고?

 

이 노래가 좋아?
성공할 것 같아?

 

초상집에서나
성공하겠지!

 

날 그만 이용해 먹어!
둘 다 나가!

 

아니, 내가 나갈게
술이나 마셔, 연습 끝났어

 

곡들은 두고 가
혼자 고를래

 

설명을 위해
두 번 편집했어요

 

검은 옷을 입었어
당신들 곡과 어울리게

 

집에서 내려올 때
계단이 열 단인데

 

열 걸음을 다 찍었죠

 

또 안뜰을 가로지르는
걸음도 모두 찍었어요

 

거리나 지리로 속이지 않겠단
선택을 한 거죠

 

위겐스가로 이어지고
클레오는 이 길을 걷죠

 

그리고 이 길은 실제로
라스파이 대로로 통하죠

 

실제 길이 이랬어요
사람들도 쳐다봤고요

 

전반의 화려한 치장들이
현실적으로 변해갑니다

 

클레오는 거리에 있어요

 

사람들, 비둘기와 함께

 

한 가게가 눈에 띄는데
이름이 '건강'이죠

 

이런 모자를 쓴 게
싫어집니다

 

난 여전히 인형 같은데
모자가 이상해

 

모자를 벗고
보는 여성이 됩니다

 

보여지던 대상에서
보는 존재가 됐어요

 

전 여기서 만난 적 있던
차력사에게

 

이날 와달라고 했죠

 

봐요, 그녀가 뭘 봤고
먹고살려고 뭘 하는지!

 

개구리들아
수조를 바꿔주마

 

세 마리째입니다!

 

이러면 모르실 수가
없겠죠

 

전 픽션에도 다큐적인 걸
넣기 좋아해요

 

이때도 그녀의 공포심을
쫓는 동안

 

카페와 거리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이 보이죠

 

전 다큐를 좋아하고

 

먼 곳에서 촬영한
좋은 작품들도 있지만

 

그런 큰 여행은
저랑 거리가 멀어요

 

제 가까이 있고
제가 아는 걸 찍고 싶어요

 

'다게레오타입'은
다게르 거리에서 찍었죠

 

다게레오타입
(1975)

 

제 동네 이웃과 상점을
찍기로 선택한 거죠

 

제가 가던 빵집, 정육점
철물점, 미장원까지...

 

한 마을을 만들기
충분했죠

 

예를 들어, 빵집에선
사람들이 줄을 서요

 

자기 차례를 기다리죠

 

뭔가를 살 때 또는
팔 때 걸리는 시간 만큼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죠

 

뉘리트 아비브는
여성 촬영감독이에요

 

뉘리트가 촬영을 했죠

 

기다리는 이들과 함께
머무는 이 롱테이크들은

 

아무 일 없어 보여도
안에선 뭔가가 일어나죠

 

맞아, 동영상과 광고는
빨리 지나가게 만들지만

 

뭔가가 걸리는 시간 속에
우린 직접 들어가 봤어

 

뉘리트는 날씬해서 돼요
나도 그땐 그랬어요

 

우리는 구석에 매복했죠
음향기사도 숨고요

 

핵심은 사람들을
찍는 거였죠

 

눈치채도 상관없었어요

 

세 알 주세요

 

하나에 20상팀이니
60상팀이네요

 

우리가 바라볼 대상을
선택했다면

 

본단 자체로 평범한 것도
더는 평범한 게 아니겠죠

 

세상에 평범한 건 없어
내가 찍는 이와 공감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잘 찍었지만
우리가 찍은 제빵사는

 

입에 문 면도칼로
빵에 착착 빗금을 그었죠

 

전 가게 주인들 말을
잘 들어봤어요

 

아주 개방적이진 않았죠

 

낯선 사람에게
무뚝뚝했고요

 

그들은
'말없는 다수'였죠

 

전 그걸 찍었어요

 

그리고 이와 대조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분노하는 소수'를
찍은 적이 있어요

 

바로 '블랙 팬서'죠

 

1968년 당시
이 미국 흑인운동 단체는

 

강령을 세워 입장을 내고
시위를 했어요

 

휴이 뉴튼과 몇몇 대표가
구속돼 있었거든요

 

블랙 팬서
(1968)


시위가 있을 때

 

저와 자크 드미는
LA에 살았죠

 

전 시위를 찍으려고
오클랜드로 날아갔어요

 

샌프란시스코 옆이죠

 

16mm를 든 작은 여자인 전
'프랑스 TV'라고 했죠

 

그러자 저를
훈련장에 들여보내 줬어요

 

- 제군들은 누군가?
- 블랙 팬서!

 

- 왜 모였나?
- 휴이의 석방을 위해!

 

- 어떻게?
- 그의 가르침을 따라!

 

- 어떤 가르침인가?
- 총을 들어라!

 

이 오빠도 저도
이런 머리로 태어났고

 

이렇게 사는 게
자연스럽죠

 

흑인들도 자신의 외모가
아름답단 걸 자각했어요

 

이 '블랙 팬서' 운동은
오래가진 못했지만

 

흑인의 정체성을 찾는
저항 운동이자

 

페미니스트
저항 운동이었죠

 

60년대 이미 미국에선
페미니즘이 활성화됐고

 

저도 페미니스트였고
현재도 페미니스트죠

 

다시 말해
여성 해방에 관한 문제들

 

특히 자기 몸에 관한
문제가 크게 와닿았어요

 

수년 동안
격렬한 싸움이 있었어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싸운 끝에

 

72년 피임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고

 

75년 임신중절권이
생기죠

 

옛날얘기지만
제가 살면서 겪은 일이고

 

이걸 증언하고 싶었죠

 

그래서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해냈어요

 

한 명은 이미 엄마이고
또 한 명은 반항적이죠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1977)


임신한 지 얼마나 됐어?

 

두 달 정도

 

수잔, 울지 마
낙태하면 돼

 

어디서, 어떻게?
그게 쉬운 줄 알아?

 

방법이 있을 거야

 

안 주무셨어요?

 

안 때리기로 했잖아!

 

우리한테
왜 거짓말했니?

 

- 돈이 필요해서요
- 뻔하지

 

솔직히 말하지?

 

- 낙태 수술비인데요?
- 뭐라고!

 

친구가 낙태해야 해서
돈이 필요했어요

 

둘의 우정은 계속됩니다

 

10년 동안
서로 곡절과 사랑을 겪고

 

여성으로서 싸워온 둘을
우리는 다시 만나죠

 

이 페미니스트들의
싸움을

 

저는 노래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이제는 아빠도
교황도, 왕도

 

판사도, 의사도
국회의원도

 

더 이상 내겐
법이 아냐

 

성별이 숙명은 아니잖아
아빠의 법은 낡았어

 

내 몸은 나의 거야

 

낳고 싶은지 아닌진
내가 제일 잘 알아

 

이 땅 위에서
아이를 가질지 말지

 

배를 부풀게 할지 말진
내가 선택해

 

내 몸은 나의 거야

 

내 몸은 내 거야

 

이런 내용이 와닿아서
작곡가 워데머와

 

여성 그룹 '오르키데'에
음악을 맡겼죠

 

엥겔스와 마르크스를
인용한 가사도 재밌어요

 

"오늘날 가정에서
남성은 부르주아고"

 

"여성은 프롤레타리아다"

 

부드럽게 불렀지만
할 말은 했죠

 

새야, 너도 들리니?
잘 들어봐

 

남자와 여자가 같이
종일 일하고 퇴근해도

 

여자의 하루는 두 배란 걸
음악에 담았죠

 

가정의 미풍양속

 

이런 공동의 싸움 속에서
큰 우정이 생기고

 

페미니스트 투쟁을
하면서도

 

즐겁게 싸웠고
정말 많이 웃었어요

 

이런 유쾌함과 공동체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죠

 

그리고 훌쩍 건너뛰어

 

한참 뒤에 화가 난
한 여성의 얘기를 했죠

 

집단이 아니에요
고독하고 화난 여성이죠

 

남자들은
많이 무전여행을 했어요

 

그게 거의 유행이었죠

 

그런데 여자들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배낭을 메고요

 

방랑자
(1968)


집도 없고 법도 싫어하는
이 여성들에게 끌렸다

 

자유와 불결함의
의미를 찍고 싶었고

 

한 떠돌이 소녀의 얘기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랑자'의
각본을 썼고

 

상드린 보네르에게
부탁했죠

 

'우리의 사랑'에 출연했고
아직 17살 반이었어요

 

딱 맞는 배우였죠

 

- 담배 가게 있나요?
- 이 동네는 없어

 

모나는 그녀가 만나고
그녀에 관해 얘기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에 의해
묘사됩니다

 

모나는 화로
삶을 지탱해 갑니다

 

모두에게 반발만 하다가
그래서 죽음을 맞죠

 

영화의 구성은 간결하고
모나가 걷듯

 

영화도 걷는단 걸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전 트래킹숏을 선택했죠

 

열세 번의 트래킹숏이
나오죠

 

모두 우에서 좌로 가는데
이게 사실 거슬리죠

 

적어도 서양의
독서 방향은 반대니까요

 

모든 트래킹숏은
1분 남짓이고

 

배낭을 멘 모나와
동행하죠

 

배경의 풍경이나 밭에
딱히 호감이 가진 않고요

 

그리고 마지막엔
늘 카메라가

 

모나를 떠나
그곳에 있는 물건을 찍죠

 

영화에서 트래킹숏은
약 10분 간격으로 나오며

 

앞서 본 물건과 상응하는
물건에서 시작하죠

 

저만 아는 수수께끼를
넣는 게 즐거웠어요

 

사실 이 영화 전체가

 

끊어지는 트래킹숏 같은
초상화예요

 

이렇게 끝나면
10분 뒤에

 

다음 트래킹숏이
이렇게 시작하죠

 

조안나 브루즈도비츠는
이 음악을

 

오직 트래킹숏을 위해
작곡했죠

 

깜짝 손님으로
상드린이 도착했어요

 

영화 구성은
이미 떠들었고

 

본인은 이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

 

처음 만나던 날
이렇게 말하셨죠

 

"이 소녀는 절대로..."

 

"고맙다고 하는 법이 없고
냄새나고, 욕을 달고 살아"

 

이런 의문은 없었어

 

'얜 어디서 왔지?'
'왜 노숙을 할까?'

 

관건은
'얘가 어떻게 살까?'였어

 

'먹을 건 어떻게 구하고
잠은 어디서 잘까?'

 

또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 관심은 심리보다는
모나가 하는 짓

 

- 또는 행위...
- 행동이야, 행동

 

배낭을 메고 놓는 것도
연습했지?

 

장화 신고 벗는 것도

 

세티나랑 캠핑을
보냈잖아요

 

- 누구냐면...
- 둘이 야외에서 잤고

 

네, 저한테 불 피우는 법
텐트 치는 법도 배우랬죠

 

장화 밑창을
고치는 장면도 있었어

 

네, 구체적인 동작들을
알아야 했죠

 

포도나무 가지치기가
아직 기억나요

 

동작이 단순하면서도
정확해야 했죠

 

내 지시를 잘 소화했어
"넌 모나야, 알아서 해"

 

본인의 반항심을
인물에 주입했고

 

전 거기 있어야 했죠

 

응, 네가 있었지
옹골차고 단단하게

 

너한테 살갑진 못했어
사실 좀 괴롭혔지

 

야, 이리 와!

 

한번은 밭을 파다가
물집이 잡혔길래 말했죠

 

"봐요, 이런 걸 원했죠?"
그랬더니 "음, 좋아!"

 

그때 진짜 열받았어요!

 

고맙다고 침이라도
발라줬어야 했는데

 

아무튼 처음에 시체로
나오는 것도 특이했어

 

심지어 전 어렸는데
죽음을 상상하란 게...

 

그것도 시켰지
진짜 시체 자루에 넣었어

 

정말 속이 타들어 갔죠

 

맞아
난 영화가 참 신기한 게

 

계획이 있고 각본을 쓰고
이런 배우와 구현하지만

 

촬영하는 동안엔
속을 태우는 뭔가가 있어

 

모나의 시신 다음 장면은
해변으로 이어졌죠

 

해변은 영감의 장소이자
정신의 풍경이에요

 

3대 요소가 모두 있죠
하늘, 바다, 땅

 

이 땅은 모래가 있고
해초도 좀 있네요

 

바슐라르의 책들이
기억나요

 

소르본에서 이 철학자의
강의를 들었죠

 

'물과 꿈'
'공기와 꿈'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꿈, 몽상

 

공상, 휴식
다 좋아하는 거네요

 

'대지와 의지의 몽상'이란
책도 있고요

 

여기서 수다를 이어가죠
새와 아이들을 부를게요

 

새를 보며 말하면
기분이 좋죠

 

진짜 새든 가짜 새든
알아듣진 못해도요

 

공유하고 싶어
영화를 만드는데

 

이걸 안 봐주면 얼마나
끔찍할까 늘 생각했죠

 

텅 빈 영화관은
영화인에겐 악몽이죠!

 

악몽이에요!

 

극장에 걸린 제 영화 중엔
소위 잘나간 것도 있지만

 

딴 건 아니었죠

 

영화를 다 말하긴 힘들고
좀 건너뛸게요

 

꼭 발포한 순서대로...

 

아니, 발포 말고
발표요!

 

그래서 여름 영화로
건너가 볼게요

 

60년대 찍은 작품인데
제목은 '행복'이죠

 

인상파 회화의 우울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죠

 

일상의 행복한
장면인데 말이죠

 

모차르트를 들으며
그 속에서 죽는 걸 상상했죠

 

각본도 촬영도
금방 끝났어요

 

짧은 우리 여름의
선명한 빛처럼요

 

행복
(1965)

 

- 엄마...
- 쉿, 아빠 자

 

조용히 해야지

 

고전적인 행복을
그대로 얘기했죠

 

젊은 남녀와
예쁜 아이들

 

자연을 사랑하고
착하고 겸손하고

 

소소한 행복의 전형이죠

 

단, 전 이 얘기를
'일드프랑스'로 가져왔죠

 

여기서 인상파 화가들은
많은 작품을 그렸어요

 

여름에 촬영했고
색이 부드럽고 섬세하죠

 

또 모차르트의 음악이
함께 나오는데

 

늘 행복을 표현하면서도
일말의 불안이 느껴져요

 

장 클로드 드루오는
드라마 스타였죠

 

'티에리 라 프롱드'로요

 

촬영장인 숲으로
섭외하러 갔죠

 

말을 타고 메달을 건 그는
딴딴 딴 딴따란 딴 딴

 

저는 가서 말했죠
"저기 죄송한데 혹시..."

 

"실제 아내, 아이들과
영화를 찍어 보실래요?"

 

아내는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출연했죠

 

8시 반부터 아니가
애들을 봐준댔으니

 

9시 영화는 볼 수 있어
너무 잘됐지

 

소소한 가족 얘기를 하는
소박한 영화 같죠

 

남자는 처와 행복하고요
근데 우체국에 갔다가

 

아내와 닮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행복에 행복을
더할 수 있다 믿죠

 

당시 신문, 잡지는
온통 그런 얘기였죠

 

'충실한 사랑이 뭘까?'

 

'행복을 찍을 수 있나?
그럴 권리는 있나?'

 

정말 만끽하며
색을 골랐어요

 

파랑, 노랑, 빨강을
적극 사용해봤죠

 

붉은색이 주조인
소풍 장면입니다

 

또 한 신을 끝낼 때
일반적인 검은색 대신

 

다양한 색을 쓰면
아름답겠단 생각을 했죠

 

그래서 빨강, 파랑, 보라
노란색으로 신이 끝나죠

 

게다가 프랑스 국기 색인
파랑

 

하양, 빨강으로
국경일 축제가 시작되죠

 

혁명기념일요

 

전 이 영화를
이렇게 묘사하곤 했죠

 

예쁜 여름 복숭아지만
안엔 벌레가 있다고

 

비극이에요

 

남자는 이 순간을
감당 못 하죠

 

아니, 실감을 못 합니다

 

그래서
반복을 사용했어요

 

반복을 시도했어요
반복을 사용했어요

 

한 편의 영화가 가진
총체성이 있죠

 

문학에선
'문체'라고 말하고

 

영화에서 전
'영화 쓰기'라고 말해요

 

영화를 만들어가는 내내
내린 결정들의 집합이죠

 

'영상을 매끄럽게 갈까?
거칠게 갈까?'

 

'명확히 분리할까?
공간을 침범할까?'

 

'이동은? 음악은?'
편집실에서 구체화되죠

 

전 영화 속에 남고
관객 곁에 있고 싶어서

 

종종 음성해설도 해요

 

하지만 '영화 쓰기'는
편집과 믹싱에서 끝나죠

 

때론 인생이 만들게 하는
영화도 있어요

 

제 삶에서 슬펐던 순간은
자크 드미가 아플 때였죠

 

자기 추억을 얘기해주고
글로 썼어요

 

어릴 때 추억을
정말 좋아했죠

 

자크는 낭트에서 컸고
아버지는 정비소를 했죠

 

자크는 메모를 하고

 

2, 3일마다 보여줬어요

 

"좋은 각본이 되겠어
만들어봐"라고 했더니

 

"난 지쳤어, 네가 해줘"

 

낭트의 자코
(1991)


그래서 자크의 유년기를
각본으로 썼어요

 

실제 자란
정비소에 가서

 

정비사분께
이곳을 빌려달라고 했죠

 

벽엔 휘발유 펌프가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전 이 영화를
세 방식으로 처리했죠

 

우선 30년대
흑백영화처럼

 

유년기를 얘기했고요

 

그리고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어

 

먼 훗날 자크 드미가
영화로 만든 장면들을

 

컬러로 가져와 사용했죠

 

추우면 엔진이 덜덜대
원래 그래

 

고마워요

 

- 다 끝났나요?
- 네

 

추우면 엔진이 덜덜대죠
원래 그래요

 

그리고 세 번째 영화가
있었어요

 

당시 많이 아팠지만
자크는 살아있었고

 

사랑하면 다 그렇듯
전 최대한 가까이에서

 

자크를 돕고 싶었어요

 

영화 용어로 말하면
'익스트림 클로즈업'이죠

 

영화가 시간을 멈추고
죽음을 부정하더군요

 

아니요

 

전 그렇게 안 느껴요

 

멈추는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있죠

 

영화는 죽어가는
자크와 함께합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자크와 함께하죠

 

일찍 영화에 빠지는
이들이 있죠

 

감히 말해, 어린 자크는
영화를 창조했죠

 

이거 봐

 

잘 만들었네

 

- 건들지 마
- 이건 뭐야?

 

카메라 위치
다 잡아놨다고

 

이 무용수를
움직이게 하고 싶으면

 

한쪽 다리를 들고
찍고

 

다시 다리를 들고
찍고

 

또 들고
찍고

 

이해되지?

 

일종의 연속 동작이야
만약 팔을 찍으면...

 

연속 동작이 돼

 

알았으면 내려가
난 이제 집중해야 해

 

안 돼
흐릿한 데다 움직였어

 

이건 못 써

 

몇 년 뒤
본인의 꿈과 상관없이

 

자크는 정비소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건 손님 목에 걸려고?
다시 해!

 

- 어따 정신을 판 거야?
- 할리우드에!

 

넌 정비공이거든

 

훗날 '쉘부르의 우산'이
크게 성공을 거두고

 

할리우드에서
자크를 불렀어요

 

저도 함께 갔죠

 

누구나 그렇지만
저도 LA에서

 

할리우드 대로 위에
스타가 새겨진 별들을 봤죠

 

또 신세대인 히피의
우상과 스타를 만났어요

 

할리우드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성공을 꿈꿨죠

 

스타!

 

사자들, 사랑(...그리고 거짓말)
(1969)

 

그 말이 날 괴롭혀

 

우리는 스타야

 

사자 머리를 한
세 명의 배우는

 

사랑하는 세 연인이고

 

TV와 뉴스는
거짓말이죠

 

당시 히피계의 주역들을
캐스팅했어요

 

라도, 라그니는
'헤어'의 각본가 겸 배우

 

비바는 앤디 워홀의
뮤즈였죠

 

뉴욕의 '팩토리'에서
앤디를 만났고

 

좀 유별났던 비바를
앤디가 설득해줬어요

 

"비바, 이건 해야 해
아녜스는 대단하다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찍었어"

 

"나였다면 5시부터 7시까지
시간만 찍었어"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은
TV 수상기입니다

 

이 영화의 정신을
줄곧 정당화하죠

 

섹스와 정치를 말이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오늘 1968년
6월 6일

 

오전 1시 44분에
사망했습니다

 

이땐 침묵하기로 했지만
원랜 계속 떠들죠

 

내 음반 들었어요?

 

애드리브를 하고

 

테이크마다
대사도 바꿨죠

 

도저히 편집이
불가능했어요

 

결국 모든 테이크와 신을
35mm 세 대로 찍었죠

 

가끔은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했죠

 

피카소의 36년 연작 중
하나를 그대로 옮겼죠

 

이것도 피카소의
작품이고요

 

눈을 뜬 채
사랑에 빠졌어요

 

셜리 클라크도
출연했죠

 

뉴욕 출신 영화인으로
일종의 제 분신이었어요

 

또 마그리트의 그림을
움직이게 했죠

 

상상의 보도 리포트고
유토피아적 허구로

 

제 할리우드 체류를
바탕으로 했죠

 

결국 제 나름의
콜라주예요

 

10년 뒤엔 벽의 이름들로
콜라주를 하죠

 

제 주변에 보이던
어떤 것에 반했죠

 

거대한 벽화에요

 

그래서 자료를 모으고
사진을 찍었어요

 

대부분 작가를 알 수 없어
주변에 묻곤 했어요

 

벽, 벽들
(1980)


종종 미대를 나온
전문 벽화가도 있었죠

 

켄트 트위첼처럼요

 

화랑과 자본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지만

 

핵심은 누구나 무료로
그림을 본다는 거죠

 

강 건너 '이스트 LA'는
치카노 미술이 점령했죠

 

윌리 헤론 같은 화가의
대형 벽화를 찍었지만

 

영화적인 영상도
찍고 싶었어요

 

전 이곳에서 자랐고

 

벽에 낙서를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다들 자기 이름이나
다른 이름을 적었죠

 

어느 날 저녁
집에 가는데

 

골목에 동생이
쓰러져 있었어요

 

16살이었는데

 

대립하던 갱단의 습격을
받았죠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어요

 

다리 건너편 갱단의
짓이었죠

 

병원으로 가면서

 

그 모든 이미지를
머릿속에 모았고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어요

 

내가 복수할 방법은
예술이라고 생각했죠

 

벽화, 음악
퍼포먼스로요

 

19살이 되는 건
내면의 압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어요

 

70년대 초, 어떻게 보면
폭력이 날 성장시켰죠

 

많은 친구가 죽었고
현재도 그런 일이 있어요

 

그래서 이건
끝나지 않는 메시지죠

 

전 이걸 예술이란 형태로
표현하기로 했어요

 

'벽, 벽들'은 외향적인
LA에 관한 영화예요

 

사람들은 벽화, 옷, 말로
자신을 표현하죠

 

하지만 전
슬프고, 절망적이고

 

내향적인 LA의 일면도
느껴요

 

도퀴망퇴르
(1980) [가짜 다큐멘터리]

 

프랑스에서 LA로
쫓겨온 에밀리는

 

아들과 살 곳을
찾습니다

 

'벽, 벽들'의 편집을 했던
사빈 마무가 연기했죠

 

거기가 네 방이야

 

마티외 드미가
아들을 연기했고요

 

그럼 이제 난...

 

- 혼자 자야 해?
- 너도 그게 좋을걸

 

그래도 내가 싫으면
어떡해?

 

아이가 싫어하면
난 어떡할까?

 

그들이 싫어하면
그들은 어떡할까?

 

그, 그녀가 싫어하면
그들은 어떡할까?

 

에밀리는 고독하고
고립된 처지에 있지만

 

이런 속내를
아들에겐 말 안 하죠

 

아이에게 누가 그래요

 

그래서 전 그녀의
입장에서 말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상을
사용했죠

 

혹은 이 영상 위에
그녀가 독백을 합니다

 

'수프통, 국자, 식탁, 온기, 함께'란
단어가 사라지면

 

'수프, 고독, 분리, 부재'란
단어만 남는다

 

우리에게 의문을 주는
장면을 쌓아갔어요

 

우리가 포착한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죠

 

침묵과 말
고통과 평안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을 여럿 찍었죠

 

예컨대 사빈과 아들이
해변을 걸어가는데

 

한 여자가 누워서

 

성경을 배에 올려놓았고
좌우엔 남자들이 있어요

 

아들이 뭐 하는지 묻자
모른다고 답하죠

 

그런데 우리도 몰라요

 

우린 이해가 안 되는 걸
찍는 것도 수긍했어요

 

영화에서든
다른 것에서든

 

느끼고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니까요

 

- 뭐야, 죽은 거야?
- 아니, 몰라

 

왜 더 안 보고 가?

 

카메라를 든 뉘리트와
밤마다 뭔가 잡으러 갔죠

 

그러다 정말 인상적인 걸
봤어요

 

한 여성이
빨래방에 있었는데

 

막 주차를 했던 우리는
유리 너머로 찍었어요

 

혼자 그녀는 기름지고 긴
머리를 만지고 있었는데

 

뭔가 관능적이고 비범한
고독이 느껴졌죠

 

조르쥬 들르뤼의 음악이
영화를 풍성하게 해줬죠

 

영화를 두세 번 보더니
유약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이 음악을 즉석에서 썼죠

 

감미로운 고통 같은
곡이에요

 

무프 거리 오페라
(1958)

 

이미 들르뤼는
23년 전에도 작곡가로서

 

'무프 거리 오페라'의
음악도 만들었죠

 

'도퀴망퇴르'처럼 저의
사생활과 연관된 영화죠

 

전 무프타르의 사람들과
친했어요

 

마치 중세 시대 같은
거리였죠

 

시장이 있고,
전 시장을 좋아해요

 

무엇보다
부랑자, 노숙자

 

노인, 절름발이
카페의 술꾼들이 있었죠

 

그때 전 임신을 했어요

 

임신했단 말은 안 했지만
증거를 찍었죠

 

즉, 부른 배를 찍었어요

 

그리고 원초적이고
태고적 공포들을

 

어떻게 집어낼 수 있나를
말했어요

 

근본적인 모순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죠

 

즉, 정말 희망으로
가득하고

 

내가 생명을 줄 아이는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끔찍이도

 

불행한 사람들이
보였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도 아기였을 텐데'

 

'이들도 어렸을 땐,
원치 않던 아이였다 해도'

 

'조금이라도 안아주고
배를 쓰다듬어 줬을 텐데'

 

누군가도

 

그들도 아기였어요

 

누군가도, 다른 누군가도
또 누군가들도

 

누군가도, 다른 누군가도
또 누군가들도

 

다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을 텐데

 

제 생각에 중요한 건

 

충고는 아니지만
여러분이 뭔가 찍을 때

 

그게 장소든, 풍경이든
사람들이든

 

관점을 가져야 해요
적어도 처음에는요

 

즉, 관점에 따라
찍어야 해요

 

그건 다큐멘터리면서
연출이겠군요

 

두 종류의 다큐가 있죠

 

순수하고 날것인 것
즉, 현실 그 자체죠

 

이렇게 만든 좋은 다큐도
있지만

 

전 영화적인 게 좋아요

 

즉, 현실을 현실이게
세팅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다는 말을
전 자주 하죠

 

전 계획하길 좋아하는데
다 연출은 아녜요

 

오히려 다큐를 위한
일반적 장치죠

 

전 처음부터 작곡가들이
저랑 동류란 걸 알았어요

 

들르뤼 말고
피에르 바르보도 있었죠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의
곡을 써줬죠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1955)

 

첫 영화로 54년 세트의
한 동네에서 찍었죠

 

정말 아무 경험 없이
찍었어요

 

영화 학교를 다닌 적도
보조를 한 적도 없었어요

 

소위 근본 없는 영화죠

 

독특한 구조의 영화를
구상했어요

 

챕터마다 교대로
두 편의 영화를 섞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처럼요

 

즉, 어부들의 시퀀스와
부부의 시퀀스가 있죠

 

두 얘기의 공통점이라면
단지 장소가 같을 뿐이죠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대치하죠

 

어업 위원회지

 

같이 배를 탈 거야

 

만남이라고 하지 마

 

세상을 이해하는
두 방식을 병치했어요

 

하나는 프레임과 대화로
섬세히 다듬고

 

당신의 기벽, 습관까지
내 것이 돼버렸어

 

더는 놀라울 게 없어

 

또 하나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닮았죠

 

그땐 전 그 영화들을
못 봤지만요

 

알랭 레네가 편집을 하고
많은 걸 가르쳐줬죠

 

또 사장됐던 기법도
썼어요

 

일반적으론
소리도 원근법이 있어서

 

인물이 멀어질수록
소리가 점점 작아지죠

 

하지만 전 소리를
늘 전경에 배치했어요

 

인물들이 얘기하며
바다로 걸어나가면

 

대화가 '보이스 오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론 화면 안에서
얘기를 해요

 

하지만 소리는
전경에 머물죠

 

전엔 이런 생각 안 했어
당신은?

 

난 항상
남들을 봤어

 

하지만 당신하고만은
다르게 살고 싶지 않아

 

세트에서 파리 근교로
넘어가죠

 

소 공원에서 제인 버킨과
어떤 작품을 구상했어요

 

걷다가 제인이 갑자기
"끔찍해, 곧 마흔이에요!"

 

전 펄쩍 뛰며
"얼마나 근사한 나이인데"

 

"네 초상을 만들 때가
온 거야"

 

그렇게 얘기가 시작됐죠

 

생명력과 생기가
넘치던 제인에게

 

죽은 여배우들의 영화와
인터뷰를 오마주해

 

일종의 대립 추론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네가 나온 것처럼
가짜 영화도 만들고"

 

"거짓말도 섞어서
인터뷰를 하는 거야"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1988)


배우는 카메라를 보면
안 된단 규칙도 깼죠

 

카메라를 봐
그래야 날 보지

 

노력하고 있어요

 

너희 자화상을
내가 찍는 거야

 

거울 속의 넌
혼자가 아냐

 

항상 날 대신해
카메라가 있을 거야

 

거울이나 프레임 안에
내가 보여도 어쩔 수 없어

 

찍는 여자와 찍히는 여자
우린 공범이었죠

 

화가와 모델이란 테마도
생각나요

 

제인의 놀라운 초상화죠

 

다역을 소화하는데
자신마저 연기해요

 

원래 난 이래요
청바지에 낡은 니트...

 

연기에 자신을 바쳤죠
익살맞고

 

이상하고

 

근사하고

 

한심하죠

 

이 포도를 먹으면
남편을 먹는 건가?

 

스페인 의상을
처음 입었는데

 

정말 싫어했어요

 

또 처음으로 남한테
내 글을 보여줬어요

 

그래, 내가 읽었고
영화에 짧게 넣을 거야

 

하지만 이 얘기는
한 편의 영화가 됐죠

 

저 같은 여자가
아니, 제가

 

어린 소년을
사랑하게 되죠

 

끝이 나쁜 사랑 얘기예요

 

우리 가족들과
찍으면 어떨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아들이 소년 역을
했으면 하지?

 

네, 맞아요

 

쿵후 마스터!
(1987)


이런 일은 처음이었죠

 

'제인 B'를 중단하고
'쿵후 마스터!'를 시작했죠

 

계획대로 제인과
마티외가 출연했고요

 

둘은 원안을 약간 수정한
이 사랑 얘기를 좋아했죠

 

여기선 게임에 빠진 소년을
여인은 사랑하죠

 

뛰거나 숙여서
칼을 피해야 해요

 

소년은 '쿵후 마스터'의
고수가 되고 싶어 하죠

 

덩치나 요술사를 깨야
위로 가는데

 

5층의 실비아를
구하라고 알려줘요

 

여름에 촬영했는데
제 아들 마티외와

 

제인의 두 딸이 함께했죠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개학을 하고
다시 '제인 B'를 찍었죠

 

영화와 미술로
놀이를 했어요

 

클로즈업에서
배경으로

 

언제 넘어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언제 뒤편을
찍는 건지...

 

보다시피 제인은
'옷 입은 마하'이고

 

'옷 벗은 마하'이며

 

티치아노의 '비너스'의
배경인 건 불만이죠

 

저 늙은 것이
페스트에 걸리길!

 

어서 죽어
썩어버리기를!

 

그럼 미술사에서
영화사로 넘어가 보죠

 

영화 탄생 백주년을 맞아
큰 행사들이 열렸어요

 

전 그 백 년을 얘기하는
작품을 의뢰받고

 

백 살인 남자를
상상해 봤어요

 

남자의 이름은
'시몽 시네마'로 지었죠

 

'내 영화가...'란 뜻도
되는데

 

내 영화가 싫으면
딴 걸 보란 거죠

 

그래서
'시몽 시네마'로 했어요

 

미셸 피콜리가 연기한
시네마 씨는

 

영화 박물관 같은 성에서
살고 있죠

 

시네마 씨의 백일야화
(1995)


밤이 오면
우울이 찾아와

 

됐고요, 오늘은 누구의
어떤 얘길 할까요?

 

르누아르와 인민전선?

 

아니, 눈 큰 남자 있잖아

 

- 버스터 키튼요?
- 아냐, 키튼 말고

 

부뉴엘
눈 하나는 잘랐지만

 

시네마 씨는 손님이 많죠

 

한나 쉬굴라, 잔 모로가
함께 왔군

 

명배우들과
촬영을 해서

 

- 저도 떨었어요
- 다 연기예요

 

무명은 아닌 배우들을
겁 없이 불러모았죠

 

장 폴 벨몽도

 

제라드 드파르디유

 

알랭 들롱

 

시네마 씨가
편찮으시다고?

 

그리고
커플로 나온 두 스타

 

드뇌브와 드니로

 

- 사랑해, 드디어...
- 꿈 같군

 

응, 꿈 같아

 

꿈의 커플과
환상적인 항해 같나요?

 

현실적, 기술적으로 보면
사실 바다는 연못이고

 

40명의 스태프가
머리를 쥐어짜

 

트래킹숏을 위한
다리를 놓고

 

조명, 필터 스크린
레일 따위를 설치했죠

 

날씨는 무더웠고

 

파라솔과 방수 바지
스무 벌을 샀던 우리는

 

나일 강가의 노예,
'바보들의 배' 같았죠

 

드니로는 하루 전에
콩코드기로 왔는데

 

사흘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면서

 

미리 시차 적응을 하고

 

컨디션을
조절했다고 했죠

 

하루만 촬영하고
이튿날 가야 했지만요

 

4시에 일어났단 얘긴

 

정말 프로다웠고
인상적이었죠

 

보타이를 매고 배 위에서
불어로 연기하겠다면서

 

오전 내내 발음을
배웠어요

 

연습시키는 재미가
있더군요

 

자기, 가스는 잠갔어?

 

고양이 집은?
마요네즈는?

 

나쁘지 않죠

 

드뇌브와 드니로를 함께
나오게 해서 뿌듯하고

 

드니로를 물에 빠뜨리는
각본이라 뿌듯했어요

 

사실은 대역이었죠

 

영화도 물에 빠졌습니다
흥행은 대실패였죠

 

전 이 뒤로 35mm와 16mm
극영화에선 손을 뗐어요

 

20세기가
끝날 때까지요

 

전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세계 곳곳에서
조금은 사랑받고 있죠

 

애정에 둘러싸여 있어요

 

정지된 화상

 

이제 사진 얘길 해봐요
50년대로 돌아갑시다

 

전 원래 사진작가였어요
그 얘길 잠깐 할게요

 

몇 분은 제라르 필립의
사진을 기억하실 거예요

 

장 빌라르와 아비뇽 연극제
국립 민중극장도요

 

다 지금도 회자되죠

 

50년대 전 연극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중요한 순간과 연출을
기록했고

 

각 작품을 상징할
이미지도 창작했죠

 

예를 들어
'홈부르크 공자'는

 

장교이자 몽상가인 그를
환한 야외에 세웠고

 

저주받은 '맥베스' 부부는
메달의 부조 같죠

 

빌라르와
카자레스예요

 

'위뷔 왕'은
파리를 산책했죠

 

'미친 소뿔
염병 다리, 소대가리!'

 

'억척 어멈'의 분장실은
포장마차였고

 

아비뇽 교황청의
임시 분장실엔

 

'수전노'를 마친
빌라르가 혼자 있었죠

 

카다케스의
살바도르 달리

 

페르마 거리의
브라사이

 

외젠 이오네스크와
코가 세 개인 약혼녀

 

피에르 세케이와 딸

 

시몬 한타이와
아내와 아들

 

마리오 프라시노스

 

14구 거리에서 찍은
칼더

 

영화인도 있죠
비스콘티, 펠리니

 

드미

 

자크 드미!

 

유명한 여배우도
찍었어요

 

아누크 에메

 

카트린 드뇌브

 

그리고 잔 모로

 

그 유명한
최고 통치자

 

피델 카스트로와
돌로 된 날개

 

또 제 이웃도 찍었죠
미미와 어머님

 

식료품상 부크라

 

친구들도 있죠
이고르, 내 동생 장

 

리누

 

그리고 베로니크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에선
우연이 연출을 도와줬죠

 

또 길을 가다가 본
사람들이

 

절묘하게 포착되죠

 

걸어가는 포르투갈 여인

 

소금산의 염전 일꾼
경건한 여성

 

서커스장 주변의
사람들

 

구성 사진도
즐겨 찍었어요

 

단체 사진도요
아르덴의 어느 가족

 

선양의 초등학생들

 

중국은 너무 멀었어요
아이들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꼈죠

 

꽃을 든 여자애

 

뒤엔 전족을 한
할머니가 있죠

 

꼬마 남자애

 

인부 아니면 죄수들이
그 옆을 지나갑니다

 

풍경도 인상적이었죠

 

바위투성이 숲에
생명체라고는

 

말과 물통을 멘 남자
둘뿐이죠

 

이런 제 프롤로그는
자화상으로 마무리하죠

 

스무 살 때 저예요

 

모자이크를
참 좋아했죠

 

36살 때예요

 

젠틸레 벨리니의 큰 그림
오른쪽 구석에서 찍었죠

 

그림도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80살의 저예요

 

저는 세기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이기도 해요

 

2천 년이 다가올 즈음
온갖 소문이 돌았어요

 

종말이 온다느니

 

엄청난 컴퓨터 버그 땜에
뭐가 다 날아간댔죠

 

31일 밤, 수천 가지 방법으로
축하를 하며

 

불안과 열광이 함께했죠

 

그리고 21세기 첫날 아침
세상은 조용했어요

 

그런데 이런 21세기 초
저에겐

 

영화인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어요

 

작은 디지털 카메라는

 

다르게 찍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죠

 

이 작은 카메라는
디지털이고

 

경이롭죠
스트로보 효과도

 

나르시시즘과
극사실주의도 표현하죠

 

더 사적이고 내밀한 것도
만들 수 있었고

 

자유롭게 다큐도
만들 수 있었죠

 

이 수다 처음에 얘기했던
세 가지를 다시 말할게요

 

저를 이끈 건
영감, 창작, 공유죠

 

영감에 대해
더 얘기해 볼게요

 

정말 신기하게도
종종 영감이란 걸 느껴요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 나오죠

 

전 에드가르 키네 대로의
한 카페에 있었어요

 

시장이 파할
무렵이었죠

 

상인들은 상자나 바구니
금고 따위를

 

트럭에 싣고 있었어요

 

환경미화원들은
빗자루를 들고 기다렸죠

 

그때 사람들이 오더니

 

몸을 숙이고
뭔가 줍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한 문장이
제 머릿속에 박혔죠

 

'우리가 버리는 걸
이들은 줍고, 먹는다'

 

이 문장이
하나의 주제로 와닿았고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이건 반드시 다큐로
만들어야 했죠

 

이삭을 줍는 행위는

 

식량이 풍족한 현대에도
남아있다

 

도시든 시골이든
몸을 숙이고 줍는다

 

여기엔 창피함도
고민도 동요도 없다

 

이때 소형 카메라가
제 역할을 했죠

 

왜냐하면 카메라를 든 사람을
분명 멀리할 법한

 

힘든 처지의 이들에게
다가가게 해줬어요

 

붐 마이크를 든 음향기사
선글라스를 쓴 조감독들

 

그런 촬영 현장이 아니라

 

사진기만큼 작은 카메라와
조그만 저만 있었죠

 

전 무섭지 않았어요

 

아무도
절 안 무서워했고요

 

사실 그건 옛날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쉽게 접촉했어요
알랭 얘기를 해보죠

 

큰 가방을 멘 채
서서 먹는 남자가 있었다

 

종종 눈에 띄었는데
늘 같은 가방에

 

항상 뭔가를 먹었다

 

파슬리를 먹고 있던 날
그에게 다가갔다

 

파슬리를 많이 드세요?

 

네, 몸에 좋으니까요

 

비타민 C, E
베타카로틴

 

아연, 마그네슘...
훌륭한 야채죠

 

그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이후 몇 주간
몇 번 더 그를 찍었고

 

음향과 상관없이
그는 툭툭 말을 던졌다

 

과일을 많이 먹어요
사과를 좋아하는데

 

사과는 얼마든지 있죠

 

- 하루에 몇 개나 먹죠?
- 여섯, 일곱 개요

 

- 주식인가요?
- 빵도 먹죠

 

몇 번 대화를 나눴고
어떻게 생물학 석사에서

 

힘든 처지가 됐는지
사연도 들었죠

 

특히 전 농촌에
관심을 가졌어요

 

원래 이삭줍기는
추수한 밭에서 하는 거죠

 

그래서 서둘러야 했어요
그땐 감자철이었고

 

변덕스러운 영화의 시간표를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죠

 

그래서 감자 협동조합에
연락을 했어요

 

줍는 이들을 보고
조합을 찾아갔죠

 

단단한 감자만
상품화되는데

 

마트에서 2.5kg, 5kg
단위로 판매되죠

 

거기서 요구하는
형태와 크기가 있어요

 

우리가 납품하는
감자의 크기는

 

45mm에서 7mm 사이예요

 

나머진 무조건 폐기하죠

 

크기가 다른 거
녹변한 거

 

잘리거나 상처난 거
자갈은 다 버립니다

 

소위 '규격 외' 감자는
밭에 버려지죠

 

한 30kg은 들고 가네요

 

뒤에 몇 톤이 더 있죠

 

몰라서 못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뭐, 그런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몰랐던 이도 있었죠

 

이렇게 큰 감자가
버려졌네요

 

보세요

 

하트 모양도 있어요

 

하트!
하트 그건 나 줘요!

 

참 신기했죠

 

기분이 좋았고
카메라를 더 가까이 댔죠

 

저도 몇 개 가져왔어요

 

다큐는
아무리 주제가 명확해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진
내가 찍은 게 알려주죠

 

하트 모양은
애정, 사랑을 뜻하죠

 

신기하게 그런 마음이
저도 안 들 수가 없었고

 

더 다정히 다가서게
해주었죠

 

또 이 하트 감자들이
영감을 줬어요

 

늙어가게 놔뒀죠

 

싹이 트고
쭈그러들길 기다렸어요

 

그래도 싹과 뿌리엔
새 생명을 품고 있었죠

 

이 무렵 오브리스트가
내 인생에 찾아왔죠

 

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 섹션을 맡았던 그는

 

'유토피아 스테이션'이란
그룹을 만들었죠

 

참여자는 포스터나
설치 작품을 해야 했는데

 

전 감자 옷을
입고 나가서

 

제 작품 '감자토피아'를
홍보했어요

 

바닥엔 감자 7백kg를
깔았어요

 

처음으로 세 화면에
전시를 했는데

 

참 좋았어요
가운데 화면엔

 

숨 쉬는 하트 감자가
있었고

 

양옆 화면에는
싹과 뿌리가 있었죠

 

이 부패한 작품을 통해

 

비주얼 아트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죠

 

'플라스틱(조형) 미술'은
플라스틱이 생각나서

 

영어 '비주얼 아트'가
전 좋아요

 

복합적으로 보는 방식을
제안하는 게 즐거웠어요

 

또 15, 16세기 세폭화에 보낸
저의 인사였죠

 

독특한 느낌을 뿜는
세폭화들이 있어요

 

실내의 모습을 담은
세폭화를 보며

 

저도 그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든 게
'누아르무티에의 세폭화'죠

 

단순한 부엌이에요

 

남자는 맥주를 마시고

 

어머니는 엉킨 줄을 풀고
아내는 감자를 깎죠

 

전 항상 이런 의문을
가졌어요

 

즉석 사진을 보면
전과 후가 궁금했고

 

영화라면
화면 밖이 궁금했죠

 

그래서 덧창을 달아
외화면을 표현했어요

 

넓은 시야를 원하는
욕구에 대한 저의 답이죠

 

관람자가 벽 너머를
볼지 말지 택할 수 있어요

 

많은 관람객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죠

 

이 작품은 뉴욕 '모마'에
한 점이 있고

 

이어서
이 자리를 주최한

 

까르띠에
현대미술 재단의

 

창작 디렉터 겸 사무총장
에르베 샹데스가

 

이 세폭화를
구입해 주었죠

 

이제 에르베를 불러
함께 수다를 떨어볼게요

 

안녕하세요

 

아녜스, 여러분
반갑습니다

 

자네가 날 불러서
처음 만났었지?

 

베니스에서
전시를 봤었고

 

05년에 제가
전화를 드렸어요

 

마르틴 아부카야 화랑
개인전이 금방 성사됐고

 

그때 저랑 함께 갔어요

 

'누아르무티에의 세폭화'를
거기서 봤죠

 

'누아르무티에의 과부들'도요

 

맞아, 자네가 날 불러
멋진 공간을 마련해줬어

 

그런 넓은 곳이 생겨서
기쁘고 흥분됐어

 

자크 드미와 자주 살던
누아르무티에 섬에 관한

 

내 생각과 제안을
한데 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목도
중의적으로 지었죠

 

'섬(그)과 그녀'
06년이었어요

 

그 섬은
다리가 놓이기 전까진

 

썰물 때만 '구아' 바닷길로
들어갈 수 있었죠

 

물때표와 통행 시간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관람객에게도
제한을 주려고

 

차단기를 설치했어요

 

썰물이 돼야
입장을 했죠

 

좋은 아이디어였어

 

공장용 비닐 커튼 위
영상으로

 

물이 빠지는 걸
보고 나면

 

그 뒤에 차단기가
올라갔죠

 

섬 안으로

 

저의 세계로
들어왔어요

 

대형 사진 엽서와
사진 오두막이 있었죠

 

여자 얼굴

 

남자 얼굴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건물 대형 전시실의

 

공간과 햇빛을 활용해

 

제 첫 영화 오두막을
지었어요

 

재료는 한 영화의
복제본 필름이었죠

 

크리스토프 발로가 만든
철골 구조에

 

아홉 개 릴로 된 복제본
필름 3천5백m와

 

릴 한두 통을 더 써서
지붕까지 마무리했죠

 

관람객 입장에선
이 영화의 멋진 배우인

 

카트린 드뇌브,
미셸 피콜리가

 

확 크게 다가왔겠죠

 

클로즈업과
필름을 투과한 햇빛이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만들었어요

 

시간을 되감을게요

 

예전 우리 영화인들은
35mm 필름과 같이 살았죠

 

손으로 편집하고 붙이고

 

통에 담아 옮겼어요

 

그리고 모든 게
극장 영사실로 갔어요

 

이젠 디지털 파일 덕분에
영사 과정은 사라졌죠

 

주위엔 수백 통의 필름이
쌓여 있었어요, 선반에도

 

지하실에도, 영사실에도
창고에도요

 

18년엔 제 영화 '행복'의
필름을 사용해서

 

오바디아 화랑에
3호 오두막을 지었죠

 

이 영화를 아는 분은
오프닝이 떠올랐겠죠

 

장 클로드 드루오와
아내와 아이들

 

실제 인물들이
멀리 희미하게 다가오고

 

전경에는
해바라기 밭이 있었죠

 

영화 필름과 함께
광학 사운드트랙과

 

영사용 천공이 잘 보이게
라이트박스도 만들었죠

 

보세요
통으로 만든 아치예요

 

필름을 보관하는
깡통들이에요

 

다시 말해, 콘텐츠와
그걸 담는 용기죠

 

다 비어 있죠?

 

네, 필름들은 오두막을
만드는 데 썼어요

 

- 재활용이군요
- 항상 그래요

 

'이삭 줍는 사람들'이
이 테마를 알려준 뒤로

 

 

관심을 가졌고

 

재활용이
즐거운 일이란 걸 알았죠

 

사물들은 죽지 않아요

 

이제는 이 통도,
심지어 저 필름도 필요 없지만

 

소위 예술적으로
재활용해

 

다른 삶을 줬어요
죽지 않고 변화한 거죠

 

소멸, 창조 대신
만물은 변하죠

 

그 변화를 일으키는 게
창작과 상상이고요

 

오두막과 같은 층엔
플라스틱 작품도 있었죠

 

꽤 진지한 작품인데
웃음을 줘요

 

에어 매트, 튜브...
어릴 때 여름방학 같아요

 

오늘날 플라스틱이
지구에 재앙인 건 알지만

 

색색에 값싸고 재미있는
이 소재를 난 좋아해요

 

3유로짜리 샌들!
소비사회가 낳은 쾌거죠

 

전 잔치를 벌였어요

 

색이 춤을 춰요

 

제 머릿속에서요
여름이에요

 

이걸 만든 동기는
두 가지인데

 

우선 온갖 색 속에
절 던지고 싶었고

 

또 소리가
영감을 줬어요

 

탁구, 샌들, 캠핑장
소리가요

 

뤼바가 진동 탁자로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죠

 

이건 '탁구공을 위한
협주곡'이에요

 

아이들의 천진한 세계에서
진중한 작품으로 가보죠

 

'누아르무티에의 과부들'
입니다

 

그 섬엔 그런 분이 많았고
전 자주 갔어요

 

저도 남편을 잃었고요

 

그분들과 친근감을
느꼈고

 

촬영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마주 앉아서요
거의 늘 저 혼자 갔죠

 

그리고 저를
신뢰해 주었어요

 

본인들의 고민을
말해줄 수 있을 만큼요

 

전 특별한 공간과 장치를
준비하기로 선택했죠

 

다면 분할 영상을
준비했어요

 

얀 반 케셀의
4대륙 연작처럼요

 

중앙의 에릭 고티에가
촬영한 35mm 영상에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해변에 놓인 탁자 주위를
돌고 있죠

 

그리고 이 영상 주위엔
14개의 화면이 있고

 

14개의 의자를 놓았죠

 

의자마다 한 여성의
얘기만 들을 수 있죠

 

어떤 사람은 죽은 이와
말을 했다는데

 

난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전 자식들에게 말해요
"떠난 지 13년이 됐지만"

 

"지금도 어제 일 같다"고

 

특히 밤에요

 

낮에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는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그립죠
그 촉감이 그립고...

 

아직 집안 가득 남편이
있어요, 남편의 체취...

 

그저껜 남편이 시장에서
사 온 콩을 먹었어요

 

진짜 얼마 전이에요

 

저는 지금처럼
모두가 한 화면으로

 

같은 것을 보는 데
익숙했는데

 

관객과의 관계를
바꿔보는 게 재밌었죠

 

보셨다시피 각자
한 명의 말밖에 못 듣지만

 

14명이 같은 방에 있죠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을 묶은 거죠

 

이 여성들 각자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은

 

이 작품이
다른 나라에서 전시될 때

 

자막을 달 수가 없었어요

 

내밀함이 깨지니까요
그래서 더빙을 했죠

 

그래서 스웨덴어로
더빙했고

 

당연히 영어로도 했고

 

스페인어와
중국어로도 했죠

 

우린 정말 사랑했어요

 

이 섬 여성들의 말이
멀리에서 들어줄 사람을

 

만나는 게
저도 놀라웠어요

 

누아르무티에 섬 주민의
사연 같은

 

아주 지역적인 것이
중국, 아르헨티나에서도

 

완전히 보편적인 게 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일로 전 예술에 대한
신뢰가 생겼어요

 

예술은
문화, 지역, 국가, 종교

 

나이도 가로지르는
그 무언가예요

 

이참에 말하면
제 나이는

 

아흔이 넘었지만
신경 안 써요

 

10년 전 여든을 앞뒀을 땐
혼자 당황했죠

 

80이란 숫자가
기차의 정면처럼

 

돌진해 오는 것 같았고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 영화에
달려들었고

 

'빨리해야 해, 빨리'란
생각을 했어요

 

그 영화는 자화상이자
제 여정담이 됐죠

 

'아녜스의 해변'이란
제목은

 

제가 평생 해변 가까이
살아서 붙였죠

 

어릴 땐 벨기에와
북해 해변에서 컸고

 

폭격을 피해
피난을 간 곳이

 

지중해의 세트였죠

 

자크가 대서양을
알려줬고

 

우린 태평양이 있는
LA에서도 살았죠

 

모든 바다를
다 본 것 같아요

 

또 자크와 오래 살았던
다게르 거리에

 

이 제목을 정당화하기 위해
해변을 만들었죠

 

집과 사무실 바로 앞에요

 

'시네 타마리스'입니다

 

세실 로즈요?
곧 바꿔드릴게요

 

'당나귀의 공주' 대여권
문의인데...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2008)

 

아녜스 바꿔드릴게요

 

내가 먼저야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차도 다 마셨네

 

견적서 어떡해?
대체 끝나질 않아

 

집 앞 해변도 좋더군요

 

이웃들도 즐거워했지만
화도 냈죠

 

이틀이나 길을
막고 있었거든요

 

허가는 받았어요!

 

- 개인 소장용이에요
- 저기 문의하세요

 

은행이죠?

 

대출 좀 해야겠어요
무이자로

 

그래야 영화가
무사히 끝날 것 같아요

 

무이자면 정말 좋겠죠
돈은 늘 문제였어요

 

물론 돈을 쓰면
거둘 줄도 알아야 한다

 

돈이 안 되면
상이라도

 

모래 위에 자크와 내가
받은 상을 모아놨다

 

칸 황금종려상
베니스 황금사자상

 

그리고 그 뒤로도...

 

'다 헛되고 헛되노니...'

 

자기 인생 얘기를 하는
수다쟁이에

 

작고 통통한 할머니를
연기 중이에요

 

난 남들한테 관심이 많고
그들을 찍길 좋아하죠

 

그들은 내 궁금증을
자극하고, 동기를 주고

 

내게 호소해 오고

 

날 당황하게도
열광하게도 하죠

 

근데 이번엔
내 얘기를 할게요

 

사람을 열었을 때
거기 풍경이 있다면

 

나를 열면
해변이 있을 거예요

 

딱 좋은데, 돌려봐요

 

거울은 화가가 자화상을
그릴 때 애용하는 도구죠

 

하지만 저는 거울로

 

저와 함께 일했던
모두를 소개했어요

 

영화란 게 '남들과 나'
'나와 남들'일 수 있단 걸

 

이렇게 표현했죠

 

남들과 걸었던 일들을
생각해 봤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였죠

 

상페의 그림을 오마주한
시위가 하고 싶었어요

 

난 온몸이 아프다

 

이 시위를 촬영했고
그 옆에서 혼자

 

'난 온몸이 아프다'
팻말을 들었죠

 

전 또 할 수 있어요
지금도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이 영화를 만들며
제 인생뿐만 아니라

 

제 영화들도 얘기하고

 

영화와 관련된 추억을
현재에 되살리고

 

또 현재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었죠

 

예컨대, 어릴 때 살던
집을 가봤어요

 

브뤼셀의
로로르 거리죠

 

촬영을 갔는데
한 부부가 살고 있었고

 

모형기차 수집가였어요
요만했죠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는데

 

결국 그걸로
다큐 하나를 찍었어요

 

제 옛날 커튼 얘기보단
재밌을 테니

 

저보단 남 얘길 듣는 게
옳은 선택이었죠

 

이 모형은 놋쇠예요

 

스위스에 가져가 팔면
8만 벨기에 프랑은 돼요

 

150개
한정 생산품이죠

 

서로 미쳤다고 해요

 

모형이든 실물이든
기차 애호가를 통틀어

 

'철도병자'라고 하죠

 

'철도병자'요?

 

드문 경험이었고
다큐를 좋아했기에

 

우연이 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요

 

어린 시절 추억은
못 건졌지만요

 

첫 영화를 찍은
'라 푸앵트 쿠르트'로 갔죠

 

장소와 인물을 선택하고
일반인과 촬영하는 법을

 

가르쳐준 곳이죠

 

그곳을 걷다가

 

영화의 추억과 관련된
장면을 만들고 싶어졌죠

 

현재형인 감정으로요

 

마침 연습으로 찍었던
16mm 영상을 찾았거든요

 

제 친구 쉬조와
남편 피에로가

 

촬영 전에
주인공 부부 역을 해줬죠

 

편집이 끝나기 전
피에로가 암으로 죽었다

 

피에로에게...

 

쉬조는 혼자 두 아들

 

블레즈, 뱅상을 키웠다

 

둘을 불러 영화의 수레로
작은 추모식을 열었다

 

둘은 못 봤던 그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진이 아닌 움직이는
아버지는 처음 보았다

 

그날 밤 우린 사랑했던
친구와 함께 걸었죠

 

한편 이름도 없이 잊힌
수백 명의 사람이

 

볼탄스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제목은 '사람들'이죠

 

수많은 녹슨 양철 상자는
이 프로젝트의 상징이죠

 

번호들은 각기 다른
상자란 걸 상기시켜 주죠

 

마치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마음이나
영혼이요

 

벽 뒤엔 위령탑이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이 거대한 설치 작품을
촬영했죠

 

바닥엔 수천 벌의 옷이
깔려 있고

 

헌옷 피라미드가 있었죠

 

작가는 여기에 의미를
부여했죠

 

옷을 집었다가 놓는
동작을

 

이 집게는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또 무작위로 집는 게
신의 손처럼도 보여요

 

선도 악도 아닌

 

집고 버리는
자기 일을 할 뿐이죠

 

여기저기의 아녜스 바르다
(2011)


세계를 다니며 만든
시리즈였어요

 

사람과 장소,
프랑스에선 예술가를 찍었죠

 

예술가와 영화인은 절 향해
그 마음을 열어주고

 

저에게
기쁨과 활력을 주죠

 

또 창작욕도 주는데

 

주제와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장치를 생각하죠

 

낭트의 철거 중인
한 건물 3층에서

 

빈털터리 무단 입주자가
어떻게 살고

 

쫓겨나는지 이야기했죠

 

전 복도에
신문 기사를 붙이고

 

버려진 방에 세 가지
생필품을 갖다놨어요

 

무단입주자들은 잘 곳을
찾으니, 매트리스

 

추우니까, 장작 난로

 

배가 고프니
카트와 전자레인지

 

침대가 있는 건
대단한 거예요

 

침대와 지붕이 있다는 건
중요하죠

 

누가 매트리스를 버리면

 

우리가
집에 가져와서 쓰죠

 

혼자 사나요?
여럿이 사나요?

 

대여섯 명 정도...
지금은 다섯이에요

 

대비해도 소용없어요
겨울이 오면

 

한순간에 추워지죠

 

올해 겨울은
유독 힘들었어요

 

창문들이 깨져서
바람이 들어오고

 

집의 습기도
장난이 아니에요

 

언제든 길에
나앉을 수 있어요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경찰이 올 수 있죠

 

- 아침 7시였어요
- 사람들이 벨을 눌렀죠

 

빨리 못 일어났더니
문을 부수고 들어왔죠

 

무지막지했죠
경찰과 무장경찰이

 

40명도 넘게 왔어요

 

우리를 포위해 몰아냈죠
순식간이었어요

 

10분도 채 안 걸렸죠

 

짐이 안에 있어요

 

- 못 가져와요?
- 절대요, 다 벽을 쳤어요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에요

 

그런데 해변을
벽에 붙일 수 있죠

 

세 방법을 사용해
바다가 연상되게 했어요

 

우선 대형 사진

 

파도의 포말이
멈춰 있죠

 

이어서 멈춰 있는 사진이
움직이고

 

파도가 모래까지
밀려오죠

 

그리고 모래가 있어요
실체가 있는 현실이죠

 

'감자토피아' 때도
그랬지만

 

전 현실과 그걸 재현한 걸
가까이 두길 좋아해요

 

근사한 기획이죠

 

움직이는 것과 정지된 걸
나란히 놓는 것도 좋고요

 

영상과

 

사진을요

 

가운데 사진은
옛날 사진으로

 

50년대
흑백 필름 사진이죠

 

그 옆에는
움직이는 비둘기를 찍은

 

컬러 디지털 사진이 있죠

 

멕시코에서 봤던 액자와
비슷하네요

 

미켈 바르셀로예요

 

다른 세폭화예요
알리스 사진을 벽에 걸고

 

양쪽에 영상을
영사했어요

 

소들은 많이
안 움직여서 좋아요

 

잠시 소를 찍고 있으면

 

정지 상태와 운동 사이의
불안정한 순간이 보이죠

 

한 마리가 귀를 흔든 뒤에
움직여요

 

즉, 운동 욕구와
정지 상태는 연결돼 있죠

 

제 가족이었던
고양이 구구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줬어요

 

라이히의 음악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죠

 

꽃과 조개로 무덤을
완성한 뒤에

 

하나씩 뺄 때마다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그걸
거꾸로 돌린 영상이에요

 

에르베, 이걸 찍던 날
딸이랑 같이 왔었지?

 

네, 딸이
크레인도 탔었죠

 

나무에 큰 꽃을 달았어

 

이유가 있어서
기준점이 필요했거든

 

난 물었지 "재단 돈으로
헬기도 빌려주나?"

 

"네, 물론이죠"

 

그래서 이 꽃을 기준으로
헬기 영상을 찍었고

 

이 무덤이 바닷가에
있다는 걸 보여줬죠

 

우리 인생에 큰 의미가
됐던 구구에게

 

무덤과 함께
넓은 공간을 주었어요

 

하지만 멀리서 볼수록
구구도 인간처럼

 

우주 속의 점일 뿐이었죠

 

이 무덤이 맘에 든다며
영상을 샀지?

 

- 네, 바로 샀죠
- 그게 끝이 아니었어!

 

네, 또 제가 전화를 해서
"저기, 아녜스..."

 

"고양이를 재단 정원에
이장하면 어떨까요?"

 

- 그다음엔요?
- 오두막을 지으랬죠!

 

아마 다들 보셨을 거예요

 

바로 저기 있죠

 

영상과 방음장치를 위해
약간의 설비를 했어요

 

영상은 무한 재생되고

 

즉, 이 재단의 방문객은
언제라도

 

구구의 무덤

 

구구에게
인사할 수 있어요

 

안에 모래 산이
있었어요

 

- 맞아
- 진짜 고양이 있어요?

 

예리한 질문이야

 

사실 진짜 구구는
여기 없어

 

누아르무티에 섬의
모래 무덤에 있지

 

아, 네!

 

묘지를 많이 간 건 아닌데
진짜 슬펐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그래도 무덤이니
슬퍼야 하는데

 

여기는 즐거웠어요
색깔들도 밝았고요

 

이건 혼자 봐야 할 것 같아
다시 왔어요

 

그래야
잘 느껴질 것 같아요

 

나도 해변에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진단다

 

이중으로 느끼지

 

내가 해변의 평온함을
즐기는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전쟁과 폭력이 있고

 

고통과 방황이 존재한다

 

우왕좌왕하다 익사하는
난민의 영상에서

 

전 세계가 본
이 끔찍한 사진까지...

 

우린 생각하고 또 잊는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역사 속에 이끌려 들어가
일을 할 때도 있다

 

오늘은 '의인들' 얘기를
해야겠어요

 

전 전쟁을 겪었고
기억하죠

 

딱히 극적인 경험은
없었지만요

 

시라크 대통령이 의인을 위한
국가 기념식을 열 때

 

식장에 전시할
짧은 작품을 의뢰받았죠

 

프랑스 의인들을 위한
국가 기념식

 

기념식 행사와 합창단,
제 대형 작품이 있었죠

 

수백 명의 사진을
바닥에 놓았어요

 

위험을 감수하고
유대인을 구한 이들이죠

 

이들의 이름은
'의인들'이죠

 

사진들을 펼쳐진 책처럼
전시하고

 

이름을 적어주었죠

 

또 누군지 알 수 없는
요즘 사진들로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의인을 표현했죠

 

의인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 두 편을 동시에 찍어

 

네 개의 화면에서
상영했어요

 

흑백영화에선 체포되는
유대인이 멀리서 보이고

 

이 영화에선 상세한 장면과
컬러가 현실감을 주죠

 

동작을 따라가려면
고개를 돌리며 봐야 했어요

 

두 화면에서 틀었던
영상을 붙여왔는데

 

관객은 몸과 머리로
이걸 재구성해야 했죠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영감을 준 의인의 사진과

 

연기를 했던 사람의
사진을 보여줬죠

 

진짜 배우는 아니지만
진짜 사람들이죠

 

전 영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리와 시골에서 찍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줬죠

 

그이는
제 고향의 제빵사였어요

 

솔직히 난
수요일만 기다렸죠

 

빵을 가져오면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반년 뒤
우린 결혼했어요

 

제 작업의 중심엔
진짜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도시 사진작가
JR과도 가까워졌죠

 

십수 년간 수천 명에게
다가갔던 친구예요

 

사람들을 만나는 영화를
함께 찍었어요

 

단, 프랑스의 시골에서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2017)


JR의 마법 트럭을 타고
한 명 한 명 얘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출발했죠

 

즉석사진 부스처럼
들어가면

 

5초 뒤에 대형 사진이
옆에서 나오는 거죠

 

일반인 사진을
크게 걸어서

 

화장품, 자동차, 커피
광고에 나오는 모델이나

 

유명인 사진에
대응하는 프로젝트였죠

 

나탈리는 우리 가게에서

 

5월 말에서
7월 초까지 일했어요

 

지금은 이곳 보니외의
최고 유명인이 됐죠

 

엄마가 저기 있으니
어때? 좋니?

 

- 정말 예뻐요
- 나도 같은 생각이야

 

버튼을 눌러

 

- 됐어요
- 우리도 보여줄래?

 

- 잘 찍었네
- 솜씨가 좋아

 

전 전문가는 아니에요

 

간질, 간질

 

놀라운 일이 많았던
사회적, 사회학적 체험이었죠

 

어떤 남자는 자신이
종악 연주자라면서

 

우릴 종탑에 데려갔고

 

또 염소젖 치즈를 만드는
어떤 여자는

 

염소의 뿔을 태우는
다른 농장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어요

 

저도 그게 이상했죠

 

프랑수아즈를 만났다

 

이 농장의 염소는
뿔이 있군요

 

염소는 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뿔을 없애지 않아요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흔히 생산을 할 때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고

 

수익성을 낮추는 요소는
모두 없애니까

 

뿔도 없애는 거죠

 

그래서 태워요

 

하지만 염소를
동물로서 존중한다면

 

뿔이 있는 대로
온전하게 두고 싶어요

 

물론 싸우죠

 

하지만 인간은
안 싸우나요?

 

그렇게 한다는 걸
지금 알았네요

 

뿔을 없애는군요

 

이 프로젝트가 좋았던 건
우리의 얘기가

 

정답을 요구하기보단

 

상황에 맞는 창의적 답을
생각하게 했다는 거죠

 

부득이하다면
뿔에 고무공을 씌우죠

 

황소처럼요

 

우스꽝스럽겠죠
광대 코끝의 공처럼요

 

다양하게 씌워줘요
빨강, 하양

 

대리석 무늬, 줄무늬

 

좋네요
멋진 상상력이에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JR과 저는
함께 작업하면서

 

나무가 자라듯
우정이 커져갔죠

 

아님 물 만난 고기 같았죠

 

JR은 날 흥미로워했어요

 

정확히는 내 노화 현상에
흥미를 보였죠

 

내 눈에 병이 있다
직업상 웃을 일은 아니다

 

검사도 받고
주사도 맞아야 한다

 

어떤 검사를 받죠?

 

알파벳을 읽게 해

 

- 이런 느낌인가요?
- 맞는데, 밑이 흐릿하고

 

글자가 살짝 움직여야 해

 

어떻게 움직이죠?

 

- 위아래로
- 위아래, 알겠어요

 

- 가서 말해줘
- 네

 

살짝 흔드세요

 

이제 좋다
내 눈엔 이렇게 보인다

 

둘이서 내 시력 저하를
순화해 표현할 방법도 찾고

 

놀랍고 벅찼던 촬영 순간들을
음미하는 게 난 소중했어요

 

놀랍네요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죠?

 

좋은 하루 되세요

 

제 마지막 날입니다
조기 퇴직을 하거든요

 

- 오늘요?
- 네

 

- 마지막 날이에요?
- 네

 

지금 절벽 앞에 선
기분입니다

 

오늘 저녁에
뛰어내리겠죠

 

안 돼요

 

새로운 것도
많이 찾겠죠

 

또 우연은 우리의
조력자란 걸 깨달았죠

 

우연이 성대한 무대를
열어줬어요

 

JR이 절벽 아래
독일군 벙커에

 

사진을
붙이고 싶어 했는데

 

전 벙커는
흔하다고 했다가

 

'생토뱅 쉬르 메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죠

 

54년에 저도 친구들과
거기에 있었고

 

해변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율리시스'란 사진인데
영화도 만들었죠

 

젊은 사진작가였던
제 친구 기 부르댕은

 

유명해졌지만
일찍 세상을 떴죠

 

그의 사진을 찍었어요

 

몽상에 잠겨
포즈를 취해줬죠

 

기의 사진들을
JR에게 보여줬고

 

하나를 바로 벙커에
붙이기로 했죠

 

위험하고 힘든
촬영이었어요

 

썰물인 시간이
길지 않았거든요

 

기를 위해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마치 요람 속의 아이 같다

 

평화롭게 쉬고 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가봤을 땐

 

밀물에 사진이 씻겼다

 

사진이 사라지는 건
익숙하지만

 

바다는 너무 빨랐다

 

바다는 항상 옳다
바람과 모래도

 

언젠가 JR과 난
우리가 모래바람 속에서

 

사라지는 영화의 엔딩을
상상했던 적이 있어요

 

오늘 수다를 그렇게
마쳐야 할 것 같네요

 

흐릿하게 사라질게요
그럼 전 떠납니다

 

자 막 번 역 : 정 구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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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제작/ 스튜디오210
자막제공/ 전주국제영화제